Ⅰ. 서 론
인간 T세포 림프친화 바이러스 1형(Human T-lymphotropic virus type I, HTLV-1)는 인간 레트로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일본, 카리브해, 남미, 중동 및 아프리카 일부 지역 등에서 풍토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1. 2012년 기준 전세계적으로 약 1000만명이 HTLV-1에 감염되었다고 추정되었으며2 Sampaio 등3의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에 따르면 HTLV-1의 전세계 유병률은 0.91%로 보고되었다. 대부분의 보균자는 무증상이나 0.25%-3.8% 가량의 소수의 감염자에서 HTLV-1 관련 척수병증/열대성 경직성 하반신마비(HTLV-1-associated myelopathy/tropical spastic paraparesis, HAM/TSP)로 발전한다고 알려져 있으며4 진행성 경직성 하반신 마비, 하지 감각이상, 반사항진, 배뇨장애와 같은 임상양상을 보인다5. HAM/TSP는 임상양상과 혈액 또는 뇌척수액에서의 anti-HTLV-1 항체 검사와 HTLV-1 proviral DNA 검사를 종합하여 진단한다. 하지만 진단과정에서 HAM/TSP는 다른 척수병증, 비타민결핍증, 중금속 중독 및 다발성경화증 등 임상증상이 유사한 타 질환과의 감별이 필요하다. 또한 단일 확진 표지자 및 표준화된 검사 체계가 부족하여 진단에 어려움이 있으며 proviral load가 낮은 환자에서는 바이러스 DNA PCR이 음성으로 나타나 진단에 제한이 있다6,7.
HAM/TSP의 임상경과는 환자간 이질성이 큰 편이나, 일반적으로 완치나 관해 없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경향을 보인다4. 현재까지 HAM/TSP에 대한 표준치료법은 확립되지 않았으며 경험적으로 코르티코스테로이드(corticosteroid)나 인터페론-알파 (Interferon alpha, IFN-α) 등의 면역치료가 사용되고 있다8. 코르티코스테로이드 투여는 운동기능 개선 혹은 통증 완화에 효과적이나 지속기간이 수 일-수 개월 정도로 짧으며, 장기간 투약할 경우 골다공증, 당뇨, 고혈압 등의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다8. IFN-α의 경우 약제를 중단할 시 치료 효과가 점진적으로 사라지며 투약기간 중 발열, 오한, 식욕저하 등의 부작용이 흔히 발생할 수 있다9. 이에 기능 회복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보조적 치료 전략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한의치료는 임상적으로 운동기능 저하에 널리 응용되고 있다. 현재까지 사지 및 하지 운동기능 저하를 동반하는 중추신경계 질환과 척수 손상 환자에서 한의치료의 유효성을 보고한 선행연구들이 다수 존재한다10-12. 한약치료 측면에서는 외상성 척수손상 환자에게 재활치료와 지황음자(地黃飮子) 투여를 병행하였을 때 위약군 대비 ASIA 장애척도 등급(American Spinal Injury Association impairment grades), 운동기능 점수 및 바델 지수(Barthel Index)에서 유의미한 개선이 확인된 바 있다10. 지황음자 투여는 외상성 마미증후군 환자에서도 대조군 대비 하지의 운동·감각기능과 보행 독립성 지표(Spinal Cord Independence Measure III)의 유의미한 호전이 보고된 바 있다11. 또한 Jiang 등12의 메타분석 연구에 따르면 척수손상 환자를 대상으로 한약치료가 운동기능 및 일상생활 수행능력 회복에 유의한 효과를 보였고, 그 기전으로 항염증, 항산화 및 세포자멸사 억제 효과가 제시되었다.
침치료 또한 급성 척수손상 환자에서 전침과 이침 병용 치료가 ASIA 장애등급척도 및 감각 점수, 기능적 독립수행평가 점수(Functional Independence Measure, FIM)의 유의미한 개선을 보였으며13, 뇌졸중 후 하지 운동기능 저하 환자의 하지 푸글-메이어 평가지표(Fugl-Meyer Assessment for Lower Scale, FMA-L) 및 버그균형검사 점수를 향상시킨다는 메타분석 결과도 보고되었다14. 더불어 척수손상 환자를 대상으로 한 네트워크 메타분석에서도 운동치료와 병행한 침치료가 ASIA motor score와 수정바델지수(Modified Barthel Index)를 유의하게 향상시키는 것으로 보고되었다15. 이러한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면, 한의치료가 HAM/TSP로 인한 운동기능 저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HAM/TSP에 대한 한의치료 중재 연구를 살펴보면, Shoeibi 등16은 HAM/TSP 환자 20명을 대상으로 한 단일군 전후 비교 임상시험에서 3개월간의 침 치료 후 요실금, 통증 및 상지 관절 경직이 유의하게 개선되었음을 보고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HAM/TSP 환자에서 보행기능 및 신체기능의 유의한 개선을 객관적 기능척도로 제시한 한의치료 관련 보고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에 본 증례에서는 HAM/TSP 의증 환자에서 한의복합치료 후 보행 및 신체 기능의 변화를 연속적인 기능평가를 통해 관찰하고자 하였다.
II. 증 례
본 증례는 연구에 앞서 IRB File No 2026-04-009 승인을 통해 본 환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음을 밝힌다.
1. 증례 및 진단
77세 여성 환자가 양하지 위약 및 보행장애를 주소로 내원하였다. 내원 약 1-2개월 전부터 양하지 위약을 자각하였으며, 수주에 걸쳐 두세 걸음만 걸어도 주저앉을 정도로 점차 악화되었다. 내원 약 1개월 전 타병원에서 시행한 뇌자기공명영상(Brain magnetic resonance imaging, Br-MRI)에서 특이소견이 확인되지 않았고 흉요추부 척추자기공명영상(Thoracolumbar spine Magnetic Resonance Imaging, T-L spine MRI) 및 전척추 자기공명영상 T2 강조 시상면 영상(whole-spine T2-weighted sagittal MRI)에서 명확한 척수 압박소견이 확인되지 않아 보존적 치료를 받았으나 증상 호전이 없어 내원 약 9일 전 응급실 경유하여 본원 신경과에 입원하였다. 입원 중 시행한 Br-MRI, NCS 및 EMG에서도 특이소견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혈액검사상 HTLV-1/2 항체 양성이 확인되었다. 이후 근이완제 처방 및 재활치료를 받았으나 증상 호전이 없어 X년 5월 30일 한의치료를 위해 본과에 입원하였다.
입원 시 양하지 근력저하(Motor grade IV/IV)가 있었으며, 양하지 저림과 함께 배꼽 하방의 진동 및 온도감각 저하, 양측 슬개건 반사항진이 관찰되었다. 타병원 및 본원 신경과 입원 시 시행한 Br-MRI에서는 두개내 병변이 없었다. 본과 입원 후 시행한 Contrast-enhanced whole-spine MRI를 재검토한 결과, 경추부를 포함한 척수 전 구간에서 척수 압박, 척추관 협착 또는 cervical spondylotic myelopathy를 시사할 만한 구조적 병변은 확인되지 않았다. 양측 후경골신경 체성감각유발전위검사에서 말초신경 이후 척수 구간의 전도 지연이 확인되어, 중추성 척수 경로 병변을 시사하였다. 이에 검사 소견과 임상 경과를 종합하여 비압박성 척수병증의 가능성을 우선 고려하였다.
혈액검사상 신경매독, HIV 등 감염성 척수병증 소견은 없었으나 문진상 약 20년 전부터 일본을 10회 이상 방문하였으며 약 7-8년 전 멕시코 및 브라질 등 HTLV-1 풍토지역을 여행한 병력이 확인되었다. HTLV-1/2 항체 양성(reactive, Signal to Cut-off ratio 3.02)이 확인되어 HAM/TSP를 우선 의심하였다. 추가 혈액검사상 자가면역항체, 혈중 비타민 및 중금속 농도에서 특이소견이 없었고, 말초신경계 평가를 위한 신경전도검사, 근전도검사 및 반복신경자극검사에서도 이상소견이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자가면역성, 대사성 척수병증 및 말초신경계 질환의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하였다. 한편 HTLV-1 DNA PCR은 음성이었다.
HAM/TSP의 진단은 전형적인 진행성 척수병증의 임상 양상과 혈액 및 뇌척수액에서의 HTLV 항체 혹은 provirus에 대한 Western blot 혹은 PCR 양성 소견, 그리고 유사 질환에 대한 배제진단을 종합하여 확진한다4. 본 증례에서는 진행성 양하지 위약, 감각저하 및 반사항진과 함께 체성감각유발전위검사에서 척수 경로 이상을 시사하는 소견이 확인되었고, 혈액검사에서 HTLV-1/2 항체 양성반응이 확인되었으며, 다른 원인 질환에 대한 단계적 배제가 이루어졌다. 다만 확진을 위한 추가 혈액검사 및 뇌척수액 검사는 시행하지 못하였고, HTLV-1 DNA PCR 또한 음성이었다. 따라서 본 증례는 definite HAM/TSP로 확진하기는 어려우나, 임상 양상과 검사 결과를 종합할 때 HAM/TSP가 가장 가능성 높은 진단으로 판단되어 clinically suspected HAM/TSP로 진단하고 치료를 시행하였다.
입원 시 시행한 계통문진 및 신체진찰 결과 전신피로감과 惡寒, 手足冷의 寒象을 보였다. 대변은 2-3일에 1회로 단단한 변을 보였고, 소변은 별무이상이었다. 식욕 및 소화는 정상, 수면양상은 양호하였다. 舌診상 舌質淡紅, 薄白苔를 보였으며, 脈診상 脈沈無力하였고 전신피로감을 호소하였으며, 기상시 및 야간에 악화되는 口乾을 호소하였다. 상기 계통문진 및 신체진찰 소견에 의거하여 피로감과 동반된 口乾, 便秘 증상을 血虛로, 惡寒, 手足冷 증상을 氣虛, 陽虛로 보아 기혈양허로 변증하여 氣血兩虛證으로 변증하였다.
2. 치료계획 수립 및 치료 내용
본 증례의 환자는 상기 계통문진 및 신체진찰을 통해 氣血兩虛로 변증하였고, 기혈을 보하고 사지 기능 회복을 도모하기 위해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의 가미방인 가미대보탕(加味大補湯)을 주 처방으로 선정하였다. 가미대보탕은 기혈을 보익하여 허약으로 인한 사지 무력 및 마비 증상에 활용되어 온 처방으로17, 본 환자의 양하지 운동기능 저하와 보행장애 개선을 목표로 투여하였다. 치료 경과 중 구건(口乾) 증상이 악화되어 온열성 약재인 부자(附子)와 육계(肉桂)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기혈을 보하는 치료 방향을 유지하면서 온열성 약재를 배제할 수 있는 인삼양영탕(人蔘養營湯)을 단기간 사용하였다. 치료 중 빈뇨 및 배뇨통 등 방광염을 시사하는 증상이 확인되어 해당 증상의 단기 조절을 위해 청심연자탕(淸心蓮子湯)을 단기간 사용했으며, 배뇨통 호전 후에는 주 치료 방향을 유지하고자 가미대보탕 투약을 재개하였다.
침치료 및 전침 치료는 하지부 침 자극이 국소 혈류를 개선하고 미세순환을 촉진함을 보고한 선행연구18와, 전침 자극이 수초 파편 제거 및 재수초화를 촉진하여 신경전도 회복을 유도한 동물실험 연구를 참고하여 수립하였다19.
1) 한약 치료
본과 입원 후 협진 외래 처방이 소진된 후인 Day 6부터 Day 48, Day 65부터 Day 91까지 70일간 가미대보탕을, Day 48부터 Day 56까지 9일간 인삼앙영탕을 복용하였다. Table 1의 용량을 1첩 분량으로, 2시간 동안 1.8 L의 물에 2첩 분량의 구성 약재들을 가압 환경에서 열수 추출하여 100 mL 3포를 탕전하였으며(광동 약탕기, 서울, 한국) 1일 3회 아침・점심・저녁 식후 2시간에 복용하였다.
Table 1
Composition of Herbal Medicine Prescribed to the Patient
2) 침 치료
Day 1부터 Day 91까지 91일간 0.25×40 mm stainless steel(동방침구제작소, 일회용 호침, 한국)을 사용하여 1일 1회 20분 동안 백회(GV20), 사신총(EX-HN1), 곡지(LI11), 수삼리(LI10), 외관(TE5), 합곡(LI4), 양릉천(GB34), 족삼리(ST36), 상거허(ST37), 현종(GB39), 태충(LR3), 음릉천(SP09), 삼음교(SP06), 팔풍(EX-LE10), 족임읍(GB41), 풍지(GB20)에 자침하였다.
3) 전침 치료
Day 1부터 Day 91까지 91일간 0.25×40 mm stainless steel(동방침구제작소, 일회용 호침, 한국)을 사용하여 양측 족삼리(ST36), 상거허(ST37), 현종(GB39), 태충(LR3)에 자침하고 4 Hz, 강도는 환자가 견딜 수 있는 최대한의 세기로 하루 1회 20분 시행하였다.
4) 뜸 치료
Day 1부터 Day 91까지 91일간 간접구(신기구 온구기)를 사용하여 복부의 중완(CV12), 관원(CV4), 천추(ST25)에 1일 1회 20분 동안 뜸 치료를 시행하였다.
5) 약침 치료
양하지 저림 증상에 대하여 Day 4부터 Day 21까지 18일간 기린 자하거약침(기린한의원 부설 원외탕전실 조제), Day 20-Day 91까지 SU어혈약침(남상천한의원 원외탕전실 조제)을 양하지 양릉천(GB34), 족삼리(ST36), 상거허(ST37), 현종(GB39), 태충(LR3), 팔풍(EX-LE10)에 시행하였다. 각 혈위당 약 0.1 mL씩 주입하였다.
6) 양약 치료
Day 1부터 Day 91까지 복용한 양약은 Table 2과 같다. 입원 기간 중 보존적 치료로 Baclofen, Limaprost, Benfotiamine/Pyridoxine 복용하던 중 입마름 증상 악화로 Baclofen을 중단하였다. 입원 중 수축기 혈압 160-170대로 상승하여 Amlodipine 5 mg 복용 시작하였다.
III. 평가 방법 및 치료 경과
1. 평가 방법
본 연구에서는 환자의 운동 및 기능 상태를 평가하기 위해 Osame Motor Disability Score(OMDS), Short Physical Performance Battery(SPPB), 그리고 Berg Balance Scale(BBS)을 사용하였다. 평가는 입원 당일을 기준으로 시행되었으며, 이후 입원 4주 차(Day 30), 8주 차(Day 59), 12주 차(Day 87)에 동일한 방법으로 반복 측정하여 시간에 따른 기능 변화를 관찰하였다.
1) Osame Motor Disability Score(OMDS)
본 증례의 환자는 HAM/TSP 의증 환자로 해당 질환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평가 척도인 OMDS를 적용하여 보행 능력의 중증도를 평가하고자 하였다. 본 척도는 보행 시 필요한 보조기구의 종류와 도움의 정도에 따라 0점(정상)부터 13점(완전한 침상 상태)까지 등급을 부여한다20.
2) Berg Balance Scale(BBS)
BBS는 노인 및 신경계 질환 환자의 균형 및 낙상 위험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14개 항목의 척도이다. 정적인 상태 또는 다양한 기능적 동작을 수행하는 동안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며 각 항목은 0점(과제 수행 불가)-4점(독립적으로 수행 가능)으로 점수하여 평가한다. 0-20점은 균형 장애, 21-40점은 중등도의 균형 상태, 41-56점은 양호한 균형 상태를 의미한다21.
3) Short Physical Performance Battery(SPPB)
OMDS는 HAM/TSP 환자의 보행 기능을 중심으로 운동장애의 중증도를 평가하는 대표적인 척도이나, 단계형 평가 방식으로 인해 점진적인 기능 변화를 반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환자의 보행 속도, 균형 능력, 하지 근력 등 전반적인 신체 기능을 보다 정밀하게 평가하기 위해 SPPB를 함께 시행하였다. SPPB는 균형 검사(balance test), 보행 속도 검사(gait speed test), 그리고 의자 일어나기 검사(chair stand test)의 세 가지 항목으로 구성된다. 각 항목은 0점에서 4점까지 평가되며, 총점은 12점 만점으로 산출된다. 점수가 높을수록 신체 기능이 양호함을 의미한다22.
2. 치료 경과
1) Osame Motor Disability Score(OMDS)
입원 당시 환자는 한 손으로 복도 난간을 잡고 반대편에서 간병인의 보조를 받았음에도 10 m를 연속 보행하지 못하고 중도에 주저앉는 모습이 관찰되어 OMDS 7점으로 평가되었다. Day 30에는 난간을 잡고 보조하에 10m 이상 보행이 가능해졌으며, 휴식을 병행하여 복도 왕복이 가능한 수준으로 보행 능력이 호전되어 OMDS 6점으로 평가되었다. Day 59에는 지팡이 또는 난간을 이용하여 편측 보조만으로 독립적으로 복도 왕복 보행이 가능해졌고, 하루 약 7회 복도 왕복이 가능할 정도로 보행 지구력이 향상되어 OMDS 5점으로 평가되었다. Day 87에는 이러한 보행 능력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으며 보행 가능한 거리는 증가하였으나, 난간을 잡고도 계단 보행은 여전히 불가능하여 OMDS 5점을 유지하였다(Fig. 1).
2) Berg Balance Scale(BBS)
BBS 점수는 입원 시 8점에서 Day 30에 26점, Day 59에 29점으로 증가하여 균형 기능의 점진적인 회복을 보였다. 퇴원 시점인 Day 87에는 2분간 서 있기 수행 중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모습이 관찰되어 28점으로 평가되었다(Fig. 2).
3) Short Physical Performance Battery(SPPB)
SPPB 점수는 입원 시 2점에서 Day 30에 6점, Day 59에 7점으로 호전되었으며, 이러한 호전 경과는 퇴원 시점인 Day 87까지 유지되었다(Fig. 3a). 세부 항목별로 보면, 일어서기 항목은 입원 시 수행이 불가능하였으나 Day 30에 5회 반복을 19.98초에 수행 가능해졌고, 퇴원 시에는 13.83초로 추가적인 호전을 보였다. 보행 속도는 입원 시 4 m 보행에 75초 이상 소요되었으나 점차 감소하여 퇴원 시 11.76초까지 단축되었다(Fig. 3b). 균형검사는 입원 시 반일렬자세 유지가 어려워 1점으로 평가되었으나 Day 30에 4점으로 호전되어 이후 유지되었다(Fig. 3c). 한편 Day 59에 일부 항목 점수 감소가 관찰되었으나, 이는 Day 58에 발생한 방광염으로 인한 일시적인 전신 상태 저하의 영향으로 판단된다.
IV. 고 찰
본 증례의 환자는 77세 여성으로 수주에 걸쳐 점진적으로 악화된 양하지 위약과 보행 장애를 주소로 내원하였다. 영상검사에서 두개내 병변이나 척수 압박성 병변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체성감각유발전위검사에서 척수 경로 이상 소견이 확인되었다. 혈청 HTLV-1 항체 양성과 다른 원인 질환에 대한 단계적 배제 과정을 종합하여 HAM/TSP 의증으로 판단하였다. 환자는 氣血兩虛證으로 변증되어 가미대보탕을 중심으로 한약치료와 침구치료를 91일간 시행받았으며, 치료 후 OMDS, SPPB, BBS에서 점진적인 호전을 보여 보행 및 균형 기능의 개선이 관찰되었다.
HAM/TSP의 기전은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진 바 없으나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가설은 감염으로 인한 만성적이고 비정상적인 면역반응에 의한 신경세포의 간접적 손상이다23. HTLV-1에 감염된 CD4+ T 세포가 활성화되면 이동성이 증가하여 말초혈액에 존재하던 감염된 CD4+ T 세포가 혈액-뇌 장벽(blood-brain barrier)을 통과하여 중추신경계로 이동하게 된다4. 중추신경계로 이동한 HTLV-1 감염 CD4+ T 세포는 Tax를 포함한 바이러스 항원을 발현하기 시작하고, IFN-γ와 같은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분비하게 된다24. 이에 주변 세포들로부터 케모카인이 분비되면서 감염된 CD4+ T cell, HTLV-1 특이적인 CD8+ T cell을 포함한 추가적인 염증세포의 유인을 야기한다. 결과적으로 HTLV-1 특이적 면역반응과 이차적인 염증반응이 증폭되면서, 최종적으로 중추신경계 조직 손상을 유발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4. 이러한 병태생리를 고려할 때, 면역 반응의 조절과 염증 억제는 질환의 진행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치료 전략이 될 수 있다.
가미대보탕(加味大補湯)은 십전대보탕의 가미방으로 ≪東醫寶鑑≫에서 “治左右癱瘓. 此氣血太虛也.” 라 하여 기혈이 모두 허하여 나타나는 중추신경계 손상으로 인한 운동 마비 질환에 전통적으로 활용된 처방이다17. 가미대보탕의 기본방인 십전대보탕은 실험적 자가면역 뇌척수염(experimental autoimmune encephalomyelitis, EAE) 모델에서 척수 내 염증성 사이토카인인 TNF-α와 Th1 사이토카인인 IFN-γ의 mRNA 발현을 억제하여 강력한 항염증 및 면역 조절 작용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되었다25. 또한 노화 촉진 근위축 모델(Senescence Accelerated Mouse(senescence accelerated mouse-prone 8, SAMP-8)에서 혈청 내 IGF-1(Insulin-like growth factor 1) 농도와 비복근 내 Sirt1(Sirtuin 1) mRNA의 발현을 증가시켜 근위축과 운동 기능 저하를 억제하는 효과가 보고된 바 있다26. 가미대보탕의 구성 약물인 우슬과 두충 또한 신경재생 효과가 보고된 바 있다. 우슬의 주요 성분인 ABPPk(Achyranthes bidentata polypeptide K)는 세포실험에서 신경세포의 생존율을 높이고 신경돌기 성장과 신경근접합부의 발달 및 성숙을 촉진하고 축삭절단 동물모델에서 손상된 축삭의 재생 속도를 유의하게 증가시킨 것으로 보고되었다27. 두충은 척수손상 동물모델에서 MAPK(mitogen-activated protein kinase) signaling pathway를 억제함으로써 세포사멸과 산화스트레스를 감소시켜 척수 손상 후 신경 보호 효과를 나타낸 바 있다28. 종합하면, 가미대보탕은 (1) 척수 내 염증 환경의 제어, (2) 근위축 방지 및 대사 활성화, (3) 손상된 축삭의 재생 및 신경 보호라는 다각적인 기전을 통해 양하지 마비 환자의 운동 기능 회복에 기여하였을 것으로 사료된다.
선행 체계적 문헌고찰에 따르면 침 자극은 자침 부위의 국소 혈류를 유의하게 증가시키는 것으로 보고되어, 하지 혈위에 시행한 자침 및 전침은 하지 근육과 말초조직의 순환 개선 및 기능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사료된다18. 전침은 전신적인 항염증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물실험 연구에서 족삼리와 현종에 대한 전침 치료는 p53 signaling pathway 조절을 통한 세포자멸사 억제 효과를 보였으며29, 합곡 전침은 혈중 TNF-α 및 IL-6 감소를 통해 허혈-재관류 손상을 완화하는 효과가 보고되었다30. 백회 및 족삼리 전침은 TLR-4/NF-κB 매개 염증반응과 미세아교세포 활성 조절, 혈액뇌장벽 보호를 통해 중추신경계 손상을 완화하는 효과가 보고되었다31. 백회를 포함한 전침은 cuprizone 유발 탈수초 모델에서 미세아교세포의 식세포 기능을 촉진하여 손상된 수초 파편 제거 및 재수초화를 유도하는 효과가 보고된 바 있다19. 이러한 침치료, 전침 치료의 효과는 본 증례에서 염증 조절과 신경 보호, 탈수초병변 회복에 복합적으로 기여했을 것을 사료된다.
본 증례는 확진 검사의 제한이 존재하는 실제 임상 환경에서 임상 양상, 혈청학적 검사 및 영상학적 감별진단을 종합하여 HAM/TSP 의증 환자를 진단하고 기능적 호전을 객관적 지표로 나타내었다는 점에서 임상적 의의를 갖는다. 특히 유사한 척수병증을 유발할 수 있는 원인 질환을 단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진단적 추론 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으며, 이는 향후 유사 증례의 임상적 판단에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러한 점에서 본 증례는 한의복합치료 후 보행 능력과 신체 기능의 변화를 단순 증상 호소의 변화가 아닌, OMDS, SPPB, BBS 등 객관적 기능 척도의 연속적 변화를 통해 기능 회복 경과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기존 보고와의 차별성을 가진다. 또한 HAM/TSP 환자에서 실제 기능 회복 가능성을 임상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한의치료가 기존 치료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보조적 치료 전략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의증 진단으로 명확한 확진 진단이 부재하며 단 1례로 치료 효과를 일반화하기 어렵고, 자연경과, 재활치료와의 병행 등 교란 요인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은 한계로 남는다. 향후 HAM/TSP 환자를 대상으로 표준화된 기능평가 지표와 장기 추적관찰을 포함한 전향적 연구를 통해 한의복합치료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보다 체계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